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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 분위기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by 상크름하다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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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와 현재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분위기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요?

오래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어땠을까?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게 크리스마스 트리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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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성서에도 예수의 탄신일을 정확히 언급한 것이 없어 날짜를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이나 종파에 따라 십이월 이십오일 1월 1일 1월 6일 3월 21일 3월 27일 등 각기 달리 예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그러다가 3백35년경 로마 교황 율리우스 1세 때 12월 25일로 통일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가 만들어졌지만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성탄절은 지금의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는 독일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가 맨 처음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관한 첫 역사 기록은 그보다 100여 년 앞선 1419년입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한 종교 건물에 트리를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17세기에는 독일 전역으로 번졌는데 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쓰기 좋은 침엽수가 독일에 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트리를 세계적인 유행으로 만든 건 영국 왕실입니다.
영국에는 18세기 독일 출신의 왕비에 의해 크리스마스트리가 맨 처음 소개된 바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최전성기를 맞습니다. 이를 이끈 게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동갑내기인 독일 출신의 앨버트 공과 결혼합니다. 둘은 금슬 좋기로 소문난 잉꼬 부부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부부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홉 명의 자녀들과 함께 직접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트리 아래에서 궁전의 모든 시종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이 모습이 당시 영국 잡지에 삽화로 실렸습니다.

 

세계 최강국을 이끄는 여왕 부부의 소탈함과 가정적인 모습에 영국인들은 열광했습니다.
이후 크리스마스트리는 곧바로 영국 귀족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영국의 이런 분위기에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도 큰 몫을 했습니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대 유령을 만난 후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다는 내용의 바로 그 책입니다.
1843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당시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의 시작

이후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이 책의 내용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그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도 이 책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트리를 장식하는 빅토리아 여왕 가족의 모습은 바다 건너 미국에도 전해졌습니다.
미국에는 독일 이주민들에 의해 크리스마스 트리가 이미 소개된 상태였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걸 독일인들의 아주 이상한 취향 정도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이교도의 상징물로 생각해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가족은 미국의 이런 분위기를 일괄 바꿔 놓았습니다.
양국은 독립전쟁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음에도 빅토리아 여왕은 워낙 유명인사였습니다.
특히 미국 여성들은 빅토리아 여왕의 패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전 세계의 신부가 입는 하얀 웨딩 드레스를 유행시킨 패셔니스타였습니다.
이후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크리스마스트리는 미국 전역에 가정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성탄절 분위기도 엄숙함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트리 옆에서 웃고 마시며 유쾌하게 즐기는 명절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에 더해 미국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때마침 발명된 전구를 이용해 조명으로 장식된 지금과 같은 트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덕에 크리스마스 트리는 낮에는 물론 밤에도 즐길 수 있는 장식 문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광장과 도심 곳곳에 조명이 반짝이는 거대한 트리를 세워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이 모습이 메스컴을 타고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미국은 더욱 초강대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중엽이 되자 조명이 달린 트리는 마침내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가 무척 늦었습니다.
1980년이 되어서야 바티칸 광장에 트리가 들어섰는데 아무래도 신교를 믿는 나라에서 먼저 성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 역사

한국은 1945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관공서에서부터 먼저 성탄절을 기념하여 쉬었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주둔지마다 트리가 세워졌지요.
그러다가 1949년부터 전 국민이 씨는 법정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당시 법정 공휴일은 신정 3.1절 광복절 추석 개천절 성탄절 등 단 6일 뿐이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던 상황에서 성탄절이 공휴일이 된 것은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영향력 때문일 것입니다.
이 날만큼은 야간 통행금지도 해제하였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더욱 특별한 날로 온 국민에게 각인되었습니다.
법정 공휴일이 되면서 서울 곳곳에도 이를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하나 둘씩 세워지게 되었고 이게 점차 각 가정으로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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